드디어 “황금당나귀”를 읽었다. 포복절도하면서 읽었다. 첫 단락부터 빠져들었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마치 그리스판 수호지를 읽는 것 같았다. 내친 김에 검색해보니 수호지는 14세기 명나라 초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훨씬 오래 된 작품이 아니었을까 기대했었는데. 황금당나귀는 서기 180-190년도 사이에 집필되었다. 원본이 온전히 전해지는 인류 최초의 소설이란다. 작가 아풀레이우스가 대단한 문장가라는 이야기는 얼핏 들은 적이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독일어 번역판으로 읽었는데 번역한 사람 솜씨 또한 장난이 아니다. 아우구스트 로데August Rode라는 인물이 번역했다. 괴테 시대에 살았던 문인이었으니 번역판 자체가 삼백년이 넘었다. 편집자의 말이 “아직 이를 능가하는 번역이 없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지 싶다.
본제는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였지만 후세에 와서 황금당나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아예 제목으로 굳어진 것 같다. 아마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주인공이 마법에 걸려 당나귀로 변해서 겪는 좌충우돌 모험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사람처럼 사고하고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듣는 당나귀가 바라 본 인간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별로 좋지 않다. 배경은 고대그리스인데 로마제국의 속주 시절이었으므로 찬란했던 그리스문화가 스러져가던 시절이었다. 특히 종교적으로 새롭게 방향이 잡혀가던 시대였다. 비너스가 신데렐라 계모 이상의 악녀로 그려지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며느리를 달달볶는 못된 시어미로 그려졌다. 아마도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기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당시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아폴레이우스가 정리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외에 올핌포스의 신들은 거의 거론도 되지 않으며 그 대신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잠시 스친다. 그 보다는 당시 새롭게 부상했던 이시스와 오시리스 컬트에 비중을 두었다. 마지막 장에서 ‘구원의 신앙’으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의 구성이 특이하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다. 이를 액자소설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전체 줄거리가 있고 사이사이에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넣었다. 바로 이 에피소드들이 백미다.
실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대해 글을 쓰려고 읽기 시작했다. 마술피리와 황금당나귀는 어떤 관계?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고 한 다리 건넌다. 마술피리는 1791년에 초연되었다. 이 시절에 크게 유행했던 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황금당나귀가 아니고 “이집트 왕 세토스”라는 소설이었다. 1731년에 프랑스인 쟝 테라송Jean Terrason이 쓴 장편 판타지소설이다.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었다. 유럽에 이집트 열병을 몰고왔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페리메이슨의 이념과 의식, 심볼리즘이 형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평가된다. 마술피리의 스토리가 바로 이 이집트 왕 세토스와 매우 흡사하다. 유약한 왕자가 시험을 통해 빛의 사제로 거듭난다는 플롯이 그렇다.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 컬트를 배경으로 한 것 역시 소설과 마술피리가 공유하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시스 여신 컬트에 대한 묘사를 황금당나귀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시대순으로 정리해 보면, 황금당나귀 → 이집트 왕 세토스 → 마술피리, 이렇게 연계된다. 이시스 컬트는 그리스 헬레네즘 대에 시작되어 로마제국을 거쳐 크게 융성했던 신앙이었다. 근 오백년간 존속되었었다. 이시스 여신이 모든 신들을 융합한 ‘종합신’으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이 이시스 여신 위에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창조주 ‘오시리스’가 있었다. 아마도 유일신교, 즉 기독교로 가는 과도기에 발생했던 현상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꾸준히 인쇄되고 있는 황금당나귀와는 달리 테라송의 이집트 왕 세토스는 현대에 와서 새로 출판되지 않았다. 디지털도서관에서 영어와 독일어 판을 PDF 로 다운받을 수는 있는데 무려 오백페이지나 되는 데다가 고어체로 된 것이라 읽기에 몹시 수고로울 것이다. 이걸 반드시 읽어야 하나? 결국 페리메이슨 걸트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이시스 컬트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고자 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테라송을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원전인 황금당나귀를 읽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황금당나귀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다 읽은 후에도 손에서 놓기 싫어 계속 뒤적 거린 책들이 있는데 그 반열에 이제 황금당나귀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죽기 전에 한 번쯤…” 읽어두어야 할 책으로 강추하고 싶다. 2천년전에 사람들 살던 모습, 그들의 생각, 그들의 풍습과 이념을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 낸 책을 또 어디에서 접할까.
참고문헌
- Assmann, Jan (2015): Die Zauberflöte. Eine Oper mit zwei Gesichtern (Wiener Vorlesungen). 1. Aufl.: Picus.
- Rode, A. (1975): Der goldene Esel: Insel-Verlag.
- Terrasson, J.; Lediard, T. (1732): The Life of Sethos: Taken from Private Memoirs of the Ancient Egyptians. Tr. from a Greek Manuscript Into French: J. Walthoe (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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