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작은 장미 부케를 들고 있는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룅 (Élisabeth Vigée-Le Brun, 1755 – 1842)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당시 드물게 보던 여류화가였다. 재주가 출중하여 프랑스 왕실 화가로 일하며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의 총애를 받았었다. 그녀가 그린 왕비와 왕실 가족들의 초상화가 여러 점 전해진다. 그 중 위의 장미를 들고 있는 초상화가 말썽이었다. 1783년 살롱 드 파리 전시회에 출품했었다가 여론의 비난이 빗발쳐 결국 다시 내려야 했다. 왕비 자신은 이 그림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여러 폭 복사하게 하여 지인들에게 하사했다고 하니 초상화 자체에 하자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림을 뜯어보아도 흠 잡을 곳 없다. 뭐가 잘 못 되었던 것일까. 문제는 왕비의 차림새였다. 신분에 맞게 비단옷에 보석을 주렁주렁 달지 않고 여염집 아낙처럼 모슬린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썼기 때문이다. 왕비는 최대한 화려하게 입어주어야 했다. 그것이 아마도 국가의 부와 권력을 상징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왕비를 이렇게 잘 차려 입혔다. 이렇게들 여겼던 것일까? 당시 파리 시민들이 매우 흥분했다고 한다.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는 프티 트리아농의 정원에서 평민 놀이를 즐겼었다. 이 역시 백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왕비면 왕비답게 처신해야 했다. 평민 놀이도 그렇지만 수수한 아낙네의 차림으로 모델을 서다니. 옷을 입지 않았거나 속옷만 입은 것과 진배없었다. 파격적인 시도였던 건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엔 먹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르 브륑의 이 그림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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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시회에 판 스펜동크Gerard van Spaendonck (1746-1822) 라는 화가는 정물화를 한 점 출품했었다. 꽃 병에 장미와 튤립, 제비고깔 꽃 등이 흐드러지게 꽃혀있는 장면이다. 장미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나비가 날아와 앉을 것 같은 사실적 그림이다.
보라색 줄무늬가 쳐진 노란 튤립이 화폭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후기 바로크 명장의 작품이다. 이 화가는 파리의 왕실 식물원에서 정물화를 가르치는 교수로 훌륭한 화가들을 여러 명 길러냈다. 그의 수제자 중 한 명이 나중에 조세핀 황후의 “장미 화가”로 큰 명성을 떨치게 될 피에르 조셉 레두테Pierre Joseph Redouté (1759-1840)였다.
레두테가 아직 스펜동크 교수의 조교로 일하던 시절 마리 앙투와네트의 눈에 들어 왕비의 정밀화 전속 화가가 되었다. 이 시절에는 아마도 프티 트리아농의 정원에 있는 식물들을 그렸을 테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때 화가들은 큰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넘겼다. 레두테는 나중에 나폴레옹이 나타나 구데타를 일으키고 황제로 추대될 때까지 파리의 자연사박물관 (식물원도 여기 속해 있었다.)에서 정밀화를 그리며 지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조세핀 황후에게 발탁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경력을 쌓게 된다.
앙투아네트에 이어 조세핀 황후의 전용 화가가 되었다니 미남이 아니었을까.
참고 문헌
- Hauschild, Stephanie (2008): Rosenträumerei. Geschichte und Mythos einer königlichen Blume. Ostfildern: Thorbe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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