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 강변의 기름진 땅은 오래 전부터 농경문화를 꽃피게 했다. 북으로는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곡창을 이루고 남으로는 깊은 숲이 있어 왕과 귀족들이 사냥하기에 매우 좋았다. 강변의 촉촉한 땅은 가축이 풀을 뜯는 목초지로 알맞았고 채소와 약초를 기르기에 적합했으며 사면에서는 포도나무가 자랐다. 농경문화가 지배했던 중세에 이런 땅을 서로 차지하려 했음은 당연했다.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백작들의 땅 따먹기 싸움이 빈번하여 아성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성주들이 높은 탑을 짓고 그곳에서 거주하며 자기 땅을 방어하던 시대였다. 이 시대에도 물론 왕이 있긴 했지만 그의 힘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1066년에 노르망디의 빌렘 공작이 도버해협을 건너가 영국 왕을 밀쳐내고 왕좌를 차지한 뒤로 수세기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12세기부터는 프랑스의 서쪽 영토 반이 영국 왕의 소유였다. 서로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다가 결국 백년전쟁이 터졌다. 수많은 아성들을 빼앗고 다시 수복하기를 반복하던 와중에도 루아르 지방은 프랑스령으로 끝까지 남았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 왕의 관심이 루아르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강을 따라 영국에 대한 방어선이 강화되어 더 많은 아성들이 구축되었다.
전쟁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 영국이 물러가고 평화가 찾아 온 후에도 루아르 지방은 왕들이 즐겨 머무는 곳이 되었다. 당시 유럽 대륙 국가들의 왕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가솔을 이끌고 영토 전체를 돌아다녔다. 프랑스 왕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적 중대사가 있을 때만 파리에 머물고 대개는 루아르 강변의 여러 성에서 번갈아 가며 거처했다.
한편, 그간 전쟁 중독에 걸렸는지 이태리로 자주 원정을 나갔다. 이번에는 프랑스 측에서 친인척 관계를 빌미로 나폴리 왕국과 밀라노 공국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샤를 8세에서 프랑수아 I세까지 삼대에 걸쳐 수없는 원정을 다녔지만 결국 이태리를 차지하는데 실패했다. 그 대신 훨씬 앞서있던 이태리의 르네상스 문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수많은 이태리 건축가,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데리고 갔으며 거장들의 작품을 수집해 갔다. 후일 루브르 박물관의 초석이 이렇게 다져진 것이다.
이때 정원문화도 큰 영향을 받았다. 그 때까지 투박한 아성에서 살던 왕들은 이태리의 밝고 개방적인 팔라초와 넓은 정원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처음 이태리 원정을 가서 나폴리에 입성했던 샤를 8세 (1470-1498)는 “이브만 있으면 완전 에덴동산이네” [1]Gotthein II, p. 3라고 했단다. 자신을 아담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는 나폴리의 정원사를 프랑스로 데리고 갔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에 이태리 정원양식을 도입하고자 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건축이 달라져야 했다. 투박하고 폐쇄적인 아성에 이태리 풍의 정원을 가져다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1515년 프랑수아 I세가 등극하면서 비로소 건축양식에 변화가 왔다. 프랑수아 I 세는 “르네상스 왕”이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초대하여 클로 뤼세 성에서 살게 하고 평생 연금을 주었던 바로 그 왕이었다. 왕의 가장 큰 취미는 새로운 양식의 성을 짓거나 개조하는 것이어서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늘 새로운 성의 설계도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루아르 지방에서도 가장 유명한 성들, 블루아, 퐁텐블로, 샹보, 쇼몽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갔다. 물론 이태리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만의 독특함을 지켰다. 투박한 타워형의 아성을 버리고 – 이제는 방어의 필요성이 없어졌으므로 – 도도하고 우아한 자태를 펼쳐냈다. 평면도 반듯했고 창문을 크게 하고 장식 기둥이나 포털 등을 이용하여 입면에 리듬을 주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탑과 뾰족한 지붕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어 장식적인 요소로 남겨두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뾰족한 지붕의 둥근 탑을 성의 네 귀퉁이에 배치하거나 이들을 더욱 변형시켜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루아르 특유의 동화와 같은 성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 Gothein, Maire-Luise, Geschichte der Gartenkunst II, Diederichs, 1926
- Hansmann, Wilfried, Das Tal der Loire, Dumont Kunst Reisefuehrer 2006
- Wusowski, Cornelia, Katharina von Medici, Bastei Luebbe, 2006
© 100 장면 비하인드 스토리
각주
↑1 | Gotthein II, p.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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